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국내 증시가 모처럼 상승 랠리를 펼칠 때마다 국민연금의 거대한 매도 물량이 지수를 짓누르는 장면을 반복해서 목격해 왔는데, 그 구조적 원인이 '법적 근거 부재' 때문이었다는 사실을요. 2025년 7월,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연금의 기계적 리밸런싱을 한시적으로 유예할 수 있는 국민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수익이 나는 시장에서 억지로 팔아야 했던 1,000조 원짜리 고래의 족쇄를 풀어줄 수 있는 법안입니다.

기계적 매도, 왜 반복됐을까
제가 국내 주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국민연금이 팔면 개인이 받쳐줘야 한다"는 말이 시장에 공공연히 떠돌았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투자자들의 불평쯤으로 들었는데, 시장 수급 데이터를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실제로 코스피 급등 국면마다 연기금의 순매도 규모가 수천억 원에 달한다는 통계가 반복됐으니까요.
이 현상의 뿌리는 기금운용계획에 있습니다. 현행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매년 국내주식·해외주식·채권·대체투자 등 자산 종류별 목표 비중을 담은 기금운용계획을 세우고, 기금운용위원회 및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출처: 보건복지부). 문제는 연초에 확정된 이 목표 비중이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연간 내내 기준점으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리밸런싱(Rebalancing)이란 포트폴리오의 자산 비중이 목표치에서 벗어났을 때 이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작업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국내 주식 가격이 많이 오르면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국내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그 초과분만큼 다시 팔아서 비중을 맞추는 것입니다. 개인 투자자라면 '수익이 난 자산을 일부 정리해서 다른 곳에 배분하는 것'쯤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리밸런싱은 장기 투자에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훌륭한 전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원칙을 수십조 원 단위로, 법적 규정대로 기계적으로 집행할 때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시장이 상승하는 와중에 쏟아지는 연기금의 매물은 지수 상승의 천장이 되고,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익을 온전히 누릴 수 없는 구조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시장이 급변해도 이 매매를 유연하게 조정할 법적 근거가 불명확했다는 점입니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도 '규정대로 팔 수밖에 없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가계부를 쓸 때도 지나치게 엄격한 규칙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때가 있습니다. 하물며 국민의 노후 자산을 굴리는 시스템에서 유연성 없는 규칙이 시장 충격을 만들어왔다면, 그것이야말로 제도가 만들어낸 불량률이라고 생각합니다.
- 국민연금은 매년 연초에 자산별 목표 비중(국내주식·해외주식·채권·대체투자)을 확정한다
- 국내 증시가 급등하면 국내주식 비중이 목표치를 초과하고, 이를 맞추기 위한 기계적 매도가 발생한다
- 기존 법에는 시장 급변 시 매매를 유예하거나 목표 비중을 조정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 결과적으로 상승장에서도 수조 원 규모의 연기금 매도 물량이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법안 발의, 뭐가 달라지나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금융시장이나 외환시장에 급격한 변동이 생겼을 때, 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회 심의를 거쳐 두 가지를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자산별 목표 비중과 허용 범위를 조정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목표 비중 달성을 위한 매도·매수를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눈에 들어온 단어는 '한시적'이었습니다. 유예 조치가 영구화되면 국민연금이 자산 배분 원칙을 무력화하고 특정 자산에 과도하게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정안은 이 조치가 국민연금의 장기적 안정성과 수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명시했고, 조치 즉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해 사후 통제를 받도록 했습니다(출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무제한 재량이 아니라 통제된 유연성이라는 점에서 설계가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포트폴리오 이론(Portfolio Theory) 관점에서 보면, 이번 법안은 전략적 자산 배분(SAA, Strategic Asset Allocation)의 큰 틀은 유지하면서 전술적 자산 배분(TAA, Tactical Asset Allocation)의 여지를 제도적으로 열어주는 것입니다. 전략적 자산 배분이란 장기 목표 수익률에 맞춰 자산별 비중을 정하는 큰 그림이고, 전술적 자산 배분이란 시장 상황에 따라 단기적으로 비중을 조율하는 실행 전략입니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은 SAA만 허용되고 TAA는 법적 근거가 없어 실질적으로 막혀 있던 구조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연기금이 시장 충격 완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저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에서 시가총액 기준으로 상위에 포진한 핵심 주주입니다. 이 거대한 장기 투자자가 시장 상황을 고려한 유연한 매매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단순히 시장 충격 완화를 넘어 장기 수익률 제고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수익이 나고 있는 자산을 억지로 팔지 않아도 되는 것과 파는 것 사이의 복리 차이는, 장기적으로 국민 노후 자산의 규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이 법안이 악용될 가능성에 대한 시선도 있습니다. 정치적 판단으로 매도를 무기한 미루거나, 특정 시기에 시장을 떠받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저도 그 부분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국회 상임위 즉각 보고라는 사후 통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그 우려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국민연금 리밸런싱이 개인 투자자한테 왜 중요한가요?
A.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에서 수십조 원 규모를 운용하는 최대 기관 투자자입니다. 이 거대한 주체가 기계적으로 매도에 나설 경우, 지수 상승을 억누르는 천장 역할을 해왔습니다. 상승장에서 수익을 온전히 누리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인 만큼, 이번 법안은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도 직결된 문제입니다.
Q. 매도 유예가 허용되면 국민연금이 특정 주식을 계속 안 팔 수도 있나요?
A. 개정안에는 '한시적' 유예라는 조건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국민연금의 장기적 안정성과 수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고, 조치 즉시 국회 소관 상임위에 보고해야 합니다. 무제한 재량이 아니라 통제된 유연성이라는 점에서, 특정 주식을 영구히 보유하는 수단으로 남용되기는 어려운 구조입니다.
Q. 전략적 자산 배분(SAA)과 전술적 자산 배분(TAA)이 뭔가요?
A. 전략적 자산 배분(SAA)이란 장기 목표 수익률에 맞춰 국내주식·해외주식·채권 등의 비중을 정해두는 큰 틀의 계획입니다. 전술적 자산 배분(TAA)은 그 큰 틀 안에서 시장 상황에 따라 단기적으로 비중을 조율하는 실행 전략을 의미합니다. 이번 법안은 SAA는 유지하면서 TAA의 법적 근거를 처음으로 마련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이 법안이 통과되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A. 법안은 현재 대표 발의 단계로, 이후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심의, 법제사법위원회 검토, 본회의 의결 순서를 거쳐야 합니다. 정치적 상황과 국회 일정에 따라 수개월에서 그 이상 소요될 수 있으며, 현재로서는 통과 시점을 단정짓기 어렵습니다.
결론
제가 직접 국내 증시에서 수급 데이터를 추적하면서 느낀 건, 국민연금의 움직임이 '예측 가능한 변수'였다는 점입니다. 코스피가 일정 수준 이상 오르면 연기금 순매도가 쏟아진다는 패턴은 이미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었습니다. 그 패턴의 원인이 법적 경직성에 있었다면, 이번 개정안은 그 경직성을 제도적으로 완화하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거대한 고래의 움직임이 유연해질 때, 그 바다에서 함께 항해하는 개인 투자자의 배도 조금 더 안전하게 순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안 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지금 이 시점에 자신의 포트폴리오에서 수급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원칙을 점검해 두시길 권합니다. 시장 구조가 바뀌는 변곡점이야말로, 준비된 투자자에게 기회가 되는 순간이니까요.